제가 집을 사기까지의 지나간 얘기를 한번 하겠습니다. 

 

대학 마지막 학기를 남겨둔 94년의 여름, 

호텔에 실습사원이라는 위치로 취업을 시작한 지방출신의 촌놈은

서울이라는 연고도 없는 곳에서 홀홀 단신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집안에는 정말 돈이 없었고 마지막 학기 대학 등록금마저도 입사한 회사에서

장학금형식으로 제공받아서 겨우 졸업할 수 있었죠.

 

1994년 8월 ~ 1994년 11월 (3개월) : 회사생활을 일단 해야겠기에 고향친구에게

연락하여 그 친구의 사글세 방에서 기생.

(하지만 결국 4개월만에 친구가 힘들다며 나가달라는...T_T)

 

1994년 11월 ~ 1995년 2월 (3개월) :  친척집(작은 아버지)에서 붙어살다

그곳에서도 3개월만에 쫒겨남

 (생활비는 못보태었지만 사촌동생들 용돈은 매월 주곤했는데 어느날 만취상태로 오신

  작은 아버지는 술기운을 빌어 매정하게 나가달라고 하시더군요.

  2월의 겨울바람을 맞으며 쓸쓸히 쫒겨났던 그때의 기억은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1995년 2월 ~ 1995년 8월 (6개월) : 고시원 쪽방 생활 (보증금 무, 월세 13만원)

(월급도 적은데 어머니 생활비 부쳐드리고, 적금하랴, 고시원 월세까지 내고나니

  밥사먹을 돈도 모자랐었죠. 가로 1m 세로 2m 정도의 고시원 칸막이방의 공간은

  미칠듯이 답답했었죠 하지만 방법이 없더군요. 보증금없이 월세로만 지낼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었으니까요. 그 시절동안 제일싼덕에 먹을수 밖에 없었던 김밥과 만두는

  지금도 썩 좋아하지않습니다.)  

 

1995년 7월 ~ 1996년 12월 (1년 4개월) : 달동네 월세방 (보증금 300만원 월세 5만원)

(이젠 서울이란 동네에 이런 금액으로 구할수 있는 집이 없겠죠? 마을버스를 타고 내려도

 언덕을 한참 올라야했던 반지하 월세방. 반지하인 덕분에 군데군데 핀 물곰팡이와 

 바닥엔 수도만 달랑있었던  2평남짓한 방이었지만 그나마 보증금을 구할 수 있었던건

 동료직원의 마이너스 대출보증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1996년 12월 ~ 1999년 07월 (2년 7개월) : 달동네 전세방 (전세값 600만원)

(2년 남짓한 기간동안 마이너스 대출도 갚아버리고 적금도 1,000만원 정도 모았었는데..

 그해 겨울, 하나뿐인 여동생이 시집을 가게 되었죠. 넉넉치 않은 돈이었지만 적금을

 미련없이 깼습니다. 더 많이 해주고 싶었지만 오빠의 능력이 너무 모자라서 미안했죠.

 결국 저는 그 달동네를 탈출하는 것을 잠깐동안이나마 보류해야만 했습니다.   

 월세방 주인아주머니를 설득해 비어있던 옥탑방에 내 남은 돈 300만원을 더얹어

  전세로 옮겼습니다. 600만원짜리 전세..상상하기 어렵죠? )

  

1999년 07월 ~ 2001년 11월 (2년 4개월) : 다세대옥탑 전세 2년 4개월 (전세 1,500만원)

(살았던 달동네가 재개발지역이 되어버려 그곳을 벗어나야 했습니다.

 전세입주자지만 미혼인관계로 조합원이니 입주권같은것 아예 없고  이주비 200만원만

 받고 바로 옮겨야 했습니다. 그당시 동생결혼후 다시 시작한 적금이 대략 1,500만원정도

 모였을때 쯤이었던 1999년 5월경에 결혼한 여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저와 떨어져 홀로사시는 어머니께서 사시는 월세가 너무 비싸서 생활이 어렵다하더군요

 결국 또 다시 붓던 적금을 깨서 어머니께 영구임대형 주공아파트 보증금으로 드렸습니다.

 다시 자산이 0 원이 되버린 상태에서 막막했지만, 새주거지를 구하기 위해 전세금 600과

 이주비 200, 그리고 보험사로부터 받은 신용대출 700을 갖고 다세대주택의 주인집 윗층

 옥탑방 1칸을 전세로 들어갔습니다.  그래도 거긴 이전의 제가 살던 어느 곳보다

 더 좋았습니다. 주방과 욕실이 따로 있었고, 뜨거운 물도 잘 나왔으니까요.

 세간살이도 많이 늘어나 있었습니다. 세탁기를 들여놓을땐 정말 기뻤죠..  

 

2001년 11월 ~ 2005년 11월(4년) : 경기지역 원룸 (보증금 2,000만원 / 월세 20만)

(여기서 제일 오래 살았던것 같습니다. 비록 월세의 부담이 있었지만

 바로전 살던 전세집 주인이 갑자기 가족이 늘어나는 바람에 방을 빼야 하는 상황인지라

 부랴부랴 구했는데 벌써 이 당시에는 전세금 1,500만원으로는 서울시내에 어떠한

 전세집도 구할 수 없게 올라버렸죠. 전세집에 살았던 한 2년동안은 거의 대출갚느라

 돈도 별로 못모았고 수중엔 여유자금이 500만원 정도 뿐이었으니까요.

 불가피한 선택이랄까? 매월 나가는 월세가 아깝긴 했지만 어쩔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나름 살면서 소형차도 사고, 나름 저금도 열심히 했죠.  

   

2005년 11월 ~ 현재 (3년)  : 인천지역 역세권 30평형 빌라 (소유 : 1억 2천만원)

(그당시 나이는 이미 30대 중반이 되어버렸는데 아무것도 이룬것이 없어서

  한심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연애도 해봤고 결혼할뻔한 적도 있었지만

  저의 경제적 상황이 항상 발목을 잡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냥 막연한 충동인지도 모르지만 집을 사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고

  결국 제가 모은 돈과 보증금 그리고 장기주택 대출을 끼면 살 수 있는 집을 찾았습니다. 

  제가 고른 조건은 무조건 방3개, 욕실2개 그리고 주차가 가능한 집.

  하지만 이 시기엔 이미 집값은 서울은 물론 수도권까지 어마어마하게 올라버렸고

  그렇다고 제분수에 넘치는 무리한 대출은 할 수 없었습니다.

  아파트는 아니었지만 결국 찾아낸 지금의 집은 역까지 2분이내의 거리를 포함해서

  제가 원하는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결국 원룸 보증금 2천만원과

 수중자금 4천만원, 그리고 은행대출 6천만원을 끼고 이 집을 사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저에겐 이때까지 올라온 과정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시간이었습니다.

 

 1994년 빈손으로 시작해서 11년후 집을샀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났습니다.

 저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성장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여기 이자리에 그대로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꿈을 키워갈 것입니다.     

 편한 삶을 살수도, 어려운 삶을 살수도 있겠지만

 누구에게든 순탄치 않은 삶의 위기는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 비관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좀 더 가치있게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은 자기자신에게 있습니다.

 

 힘을 내십시오!! 

 주어진 환경과 여건이 부족하다고,

 남들보다 못한 아웃사이더라고 절망하지 마십시오.

 행복은 다가오는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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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안동베짱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