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암역(6호선) 참살이길과 신촌역(2호선) 명물거리

매년 9월 말이 되면, 이 두 거리는 온통 빨간색과 파란색의 플랭카드가 걸려있다. 바로 9월 마지막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열리는 고연전 혹은 연고전을 위한 플랭카드들이다. 자신의 학교를 응원하고, 상대방의 학교를 애교있게 비방하는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그 플랭카드를 찬찬히 읽어보면 아주 재미있는 내용이 많다.


“고대 주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고대 됐거든. 너도 똑같거든”

“신촌으로 견학온 안암골 분교 아이들”

“고대로 전화할 땐 지역번호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단 하나의 진실! 고대 즐”

(이상 연대측)

 

“아버지는 말하셨지~ 연세는 즐이다~”

“이제는 이기는 것도 지겹습니다!”

“연대~ 너나 잘하세요~ <친절한 호순씨>”

“연대.. 제발 져달라고?? 됐.거.든?!”

“연세 꼬마야! 막걸리 처음 마시니???”

(이상 고대측)


두 학교의 신경전은 비단 이런 플랭카드 뿐만 아니다. 행사의 명칭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원래 이 행사의 정식명칭은 매년 바뀌게 되어 있는데, 홀수년도의 경우 고연전이 정식명칭이고, 짝수년도의 경우 연고전이 정식명칭이다. 하지만 대개 양 학교 학생들에게는 각각, 고연전과 연고전으로 통한다.

이렇게 자신들의 학교이름을 앞에 붙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듯이, 각 학교에서 만드는 인쇄물이나 대자보에서는 상대방의 학교 이름을 아주 작게 쓴다. 예를 들면 고려대에서는 “”이라 하고, 연세대에서는 “”이라 한다.


소위 두 명문사학의 자존심이 걸렸다고 하는 이 행사를 보는 시각도 가지각색이다. 어떤 이들은 젊음의 패기를 느낄 수 있는 잔치의 한 마당이라고 하기도 하며, 어떤 이들은 학교가 학문이 아닌, 행사와 쇼를 통하여 학벌의식을 조장한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은 비단 외부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각 학교의 일부 학생들은 ‘안티고연전’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취업난 등을 이유로 고연전을 아예 외면하는 고학년들로 인해서, 그 열기는 예전같지 않다고 한다.


이렇게 고연전은 난항을 겪고 있지만, 쉽사리 없어질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이 행사 때문에 받는 비판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훨씬 큰 이점을 얻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이 행사의 명칭(vs. )에서도 드러나듯이 자신의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다.


그렇다면 두 학교가 축구와 야구, 농구, 럭비, 아이스하키 대결을 펼치고 다른 학생들은 응원하고, 끝난 후에는 먹고 마시고 노는 이 행사가 어떻게 각 학교의 학생들에게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심리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예전에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입학시험을 준비할 때, 93년 기출문제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

평소에 고대에 다니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던 철수는 연대와의 축구경기에서 신나게 응원을 하였다. 이후 철수의 고대에 대한 태도에 변화가 있을 것인지의 여부에 대하여 설명하시오.”


물론 이 문제의 답은 “철수는 고대에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될 것이다.”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태도의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유명한 사회심리학자인 Festinger는 사람들에게는 심리적 일관성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태도와 행동이 일치하지 않아서 부조화가 발생하면 불편감이 생겨서, 태도와 행동을 조화시키려는 속성이 있다는 인지부조화 이론(cognitive dissonance theory)을 발표하였다.

사람들은 일관성을 추구한다. 그래서 일관성이 없는 사람들, 예를 들자면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한다. 또 예전에 했던 말과 지금 하는 말이 다른 사람을 비난한다. 마치 일관성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듯이 말이다.

태도와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일관성을 추구하기 위해서 태도와 행동을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을 사용해야 할까? 대부분의 경우에 행동은 대체로 취소나 변경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로 바꾸는 것은 태도이다. 즉, 태도를 행동과 일관되게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행동에 맞는 태도를 취함으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데, 결국 부조화를 감소시키는 과정은 행동의 합리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93년 기출문제로 돌아가 보자.

철수는 어렸을 적부터 공부를 잘했다. 그래서 주위 어른들은 철수가 서울대에 당연히 들어갈 것이라고 다들 생각했고, 철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철수는 운이 없게도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고, 결국 고려대에 입학을 했다.

이럴 경우라면 철수는 평소에 고대에 다니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1년만 다니면서 재수를 해보겠다고 속으로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에 다니면서 재수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재수를 한답시고 여름방학에도 제대로 놀지 못하고, 혼자서 수능을 준비하려니 힘도 빠지고 의욕도 나지 않을 것이다. 친구들이 계속 놀자고 했지만, 철수는 미안한 마음을 무릅쓰고 계속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여름방학을 보내고 2학기를 맞이했는데, 고연전을 한다고 학교가 온통 시끄럽다. 철수는 예전부터 듣기는 했지만,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주위 친구들이 이번에는 꼭 같이 가자며, 조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빨간 티셔츠를 입고 연대와의 축구경기를 응원하러 갔다. 그래서 “철수는 연대와의 축구경기에서 신나게 응원을 하였다.”


철수의 태도 ☞ “난 고대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철수의 행동 ☞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젊은 그대>를 부르면서 신나게 응원을 하다.


부조화 발생!!

조화 추구


철수의 태도 ☞ “난 고대에 다니는 것이 자랑스러워”






사실 인지부조화의 원리는 아주 많은 곳에 작용하고 있다.

어디가 그런가?

해병대가 그렇다. 물론 해병대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엄청난 사람들이 입대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별로 없는 사람들(태도) 해병대에 입대해서, 죽을 고생을 하면서 군생활(행동)을 하게 되면 제대할 때에는 모두 애국자가 되어서 나온다.

그래서 제대 이후까지 해병전우회로 활동하는 것이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잘 해주다 보면,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될 수도 있고

월급을 많이 주지 않아서 불만인 회사도 계속 다니다 보면, 나중에는 자신의 일에 대하여 대단한 자부심을 갖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해서라도 행복해 진다면야 어떤가?

하지만 이런 방법보다는, 자신의 태도와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떳떳함이 더 멋있지 않을까?




출처 : http://paper.cyworld.nate.com/paper/paper_item.asp?paper_id=1000177934&post_seq=824209
Posted by 장안동베짱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