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빨간 날이다. 충분히 늦잠을 자 잔뜩 늘어진 몸을 일으켜 당신은 어슬렁 어슬렁 화장실로 간다. 깔끔하게 볼 일을 본 뒤, 배와 어깨를 벅벅 긁으며 거울을 본다. '잘생긴 얼굴에 흠집은 나지 않았나...' 싱긋 거울에게 한 번 웃어보이고 손짓도 한 번 해본다. "너 멋져!" 냉장고에서 아주 익숙한 손놀림으로 물병(대용으로 쓰이는 사이다 페트병) 뚜껑을 연 다음 그대로 입에 가져가서 마신다. (컵 쓰기가 귀찮은 것도 있고, 컵으로 마시지 않으면 국자로 목덜미를 강타해버리는, 어쩌면 내 핏줄이 아닐지도 모르는 어머니는 지금 없다.) 살짝 풀어진 눈을 비비고 기지개를 켠다. 동시에, 컴퓨터 전원도 켠다. 부팅이 되는 동안 거실로 나와 식탁 위를 보니 (그래도 내 핏줄임을 선언하고 있는) 어머니의 쪽지가 있다. - 문단속 잘하고 다녀라. 엄마 어디 좀 다녀오마. 밥은 없다. 반찬도 없다. 하지만 국자는 있다. 뻘짓거리하고 다니면 죽을 줄 알아라 - 시계를 보니 10시가 훨씬 넘어있다. 이따가 라면이나 끓여먹어야겠다. 당신은 다시 당신의 사랑스런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간다.
방에는... 정확히 방바닥에는...
당신이 일어났을 당시의 모양새가 잘 보존되어 있는 이불과 배개가 있고, 어제 읽다 만 만화책 몇 권이 동서남북 사방에서 진을 치고 있고, 새벽에 배고파서 먹은 켈로그 콘푸로스트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릇과 숟가락이 있고, 벗어놓은 청바지와 체크무늬 셔츠가 절단된 시체마냥 널부러져 있고, 형형색색의 과자봉지들 또한 배를 드러낸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뭐 어떠랴. 오늘은 빨간 날이다. 오늘 저녁 때까지는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내 손이 거쳐간 것들과의 추억을 벗삼아 마음껏 뒹굴러다녀도 되는 자유, 평등, 박애의 날이 아니던가! 에헤라디야! 오늘의 목표는 육신과 영혼의 완전한 휴식이다. 당신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당신이 어제 잠이 든 새벽 3시부터 당신이 일어난 10시 사이에 기특하게도 깨어 당신에게 메일을 보내거나 홈페이지 방명록에 글이라도 남긴 사람을 찾기 시작한다. 오오! (어느 세계 올빼미인 줄은 모르겠지만) 오늘은 두 명이나 글을 남겼다! 자, 답글을 해주자...
딩동♬ 딩동♪
"자기야 나야! 문 열어줘!"
방에는... 정확히 방바닥에는...
당신이 일어났을 당시의 모양새가 잘 보존되어 있는 이불과 배개가 있고, 어제 읽다 만 만화책 몇 권이 동서남북 사방에서 진을 치고 있고, 새벽에 배고파서 먹은 켈로그 콘푸로스트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릇과 숟가락이 있고, 벗어놓은 청바지와 체크무늬 셔츠가 절단된 시체마냥 널부러져 있고, 형형색색의 과자봉지들 또한 배를 드러낸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뭐 어떠랴. 오늘은 빨간 날이다. 오늘 저녁 때까지는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내 손이 거쳐간 것들과의 추억을 벗삼아 마음껏 뒹굴러다녀도 되는 자유, 평등, 박애의 날이 아니던가! 에헤라디야! 오늘의 목표는 육신과 영혼의 완전한 휴식이다. 당신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당신이 어제 잠이 든 새벽 3시부터 당신이 일어난 10시 사이에 기특하게도 깨어 당신에게 메일을 보내거나 홈페이지 방명록에 글이라도 남긴 사람을 찾기 시작한다. 오오! (어느 세계 올빼미인 줄은 모르겠지만) 오늘은 두 명이나 글을 남겼다! 자, 답글을 해주자...
딩동♬ 딩동♪
"자기야 나야! 문 열어줘!"
문 바깥에서 당신을 부르는 그 웬수같은 '자기'가 당신이 아는 '자기'라면 당신은 세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첫째, 당신을 잘 아는 '자기'에게 기꺼이 문을 열어 반겨 맞는다. 당신의 '자기'는 이미 당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알고 있기에.
둘째, 당신의 모든 행동을 멈추고 얼음땡 놀이를 하듯 조용히, 아주 조용히 '자기'가 가버리길 기다린다.
셋째, 방을 치우고 문을 열어 '자기'에게 평소의 깔끔하고 위엄있는 모습 그대로 집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첫째와 둘째 것을 선택한 사람이라면 뭐 내가 따로 알려줄 껀덕지가 없다. '문 잘 열어주는 방법' 이딴 게 뭐가 재미있겠느냔 말이다!
남자든 여자든 자기 방은 잘 안 치우고 산다. 왜? 자기 공간이니까. 다람쥐도 자기 구멍에다만 도토리 모아둔다. 다람쥐 구멍이 깨끗해봐라. 그 구멍으로 다람쥐가 들어가서 잘 사나. 방이란 적당히 지저분하고, 적당히 어질러져 있어야 정이 드는 법이다. BUT
손님이 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동성 친구라면야 뭐 어떻게든 되지만, 이성 친구의 기습이라든가 심각한 경우엔 목사님과 집사님들의 급작스런 가정방문, 더 심각한 경우 대통령 각하의 서민가정방문 이벤트 등 그동안 쌓아올린 이미지를 한꺼번에 무너뜨리게 되는 위기의 순간을 우리는 맞을 수도 있다. 타인의 시선을 나무늘보 코알라보듯 하는 사람이라도 "여기가 사람 사는 데냐? 돼지가 사는 데냐?" 이런 말은 듣기 싫잖아? 그치?
방을 치우자. 적어도 '정리는 하고 사는 구만.' 이 소리는 듣게. 주어진 시간은 1분이다. 1분 내에 방을 치워야 한다.
★ 1분? : "누구세요?" "자기야 나야!" 이 대답이 끝나는 순간부터 당신의 몸은 움직여야 한다. "잠깐만 기다려!" 이 말 한마디 허공에 살포시 띄워놓고 비호처럼 빠르고 대담하게 움직여라. 사람이 문 밖에서 웃으며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은 1분이다!
박스 활용법 : 필자가 쓰는 방법이다. 뭐 지저분하게 산다는 건 아니지만,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필자의 방 한 구석엔 커다란 종이 박스 하나가 있다. 평소엔 물건 진열대로 쓰이지만, 비상 시엔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잠깐만 기다려!" 이 말 함과 동시에 박스를 열고, 바닥에 있는 모든 물건을 쓸어담아 박스에 넣어버린다. 박스 부피가 클수록 좋다. 그러나 널려있는 물건에 비해 박스의 용량이 부족하다면 일단 넣을 수 있는 것만 다 쓸어넣고 나머진 <안방 활용법>으로 대처한다. 주의할 건 박스 위의 진열품은 박스를 닫은 후에 꼭 다시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이 박스는 뭐야?" "아버지가 절대로 손대지 말라면서 여기다가 가져다 놓으셨어. 아마 아버지 젊었을 적 쓰시던 물건들일텐데 몇몇 깨진 게 있어서 박스에 잘 보관하셨나봐." 박스는 화려하지 않은 것으로 구해라. 방 미관을 해치지 않는 걸로.
안방 활용법 : 대부분 안방은 아무리 친한 사이더라도 잘 들어가지 않는 그 집의 가장 높은 분의 거처이다. 안방에 일단 모든 짐더미를 가져다 놓자. 그 후 문을 잘 닫아놓으면 그만이다. 아무리 '자기'라도 안방 들어가보잔 말은 안할 거다.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아직 잘 모르는 '자기'라면 더더욱. 만일 피치못할 사정으로 안방에 들어가야 한다면 정중하게 이렇게 말하자. "지금 안방이 조금 지저분 하거든? 내가 얼른 들어가서 조금 정리하고 나올께. 알았지?" 아버지, 어머니껜 죄송하지만 뭐... 어쩔 수 있나.
구석 활용법 : 방 여기저기를 보면 은근히 틈새가 많다. 책장 뒷편, 옷장과 벽 사이, 컴퓨터 뒤쪽 등등... 바닥에 깔아놓은 게 많지 않다면 구석 활용법도 요긴하다. 특히 책이나 옷 같은 경우엔 맞춤한 구석에 끼워넣는 게 박스나 안방 활용법보다 시간을 벌 수 있다. '자기'가 오버로드나 옵저버 류가 아니라면 집 구석을 헤집고 다니며 보물찾기 놀이 하는 데 힘 쓰고 싶진 않을 거다. 방에 오래있을 게 아니라면야 내 방 구석에 짐더미를 숨겨놓은 들 뭐 그리 대수겠는가. 거실에서 놀아라 거실에서. 넓은 거실 놔두고 왜 방에서... '자기'한테 이렇게 말해라. "내 방은 좀 답답해서... 거실로 나가자. 우리."
자, 정리할 곳은 만들어졌다. 이제는? 정리를 어떻게 하느냐다. 정리를 할 때는 당신의 두 손과 두 발이 모두 다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할 수 있도록. 정확하고 빠른 움직임만이 당신의 '자기'로부터 당신의 방을 지켜낼 수 있을 거다.
손이 정리할 것 - 도서, 그릇 등 부피가 비교적 크고, 단단한 것.
발이 정리할 것 - 옷가지나 휴지쪼가리 등 작고, 가벼운 것.
책부터 시작해야 한다. 책이 널려있으면 아무리 깔끔한 방이라도 좀 난잡스럽게 보이기 마련이다. 책은 손으로 사악~ 그러모아 쌓는다. 뭐 박스나 안방이 가깝다면 그대로 던져버려도 되겠다. 세로로 던지면 책이 아파하니 반드시 가로로 던지되 왠만하면 살살 던져라. 다음은 이불이다. 이불은 평소에 두번만에 개는 법을 익혀두도록 한다. 쫙 펼쳐들고 모으고, 한 번 접고 다시 접고. 이렇게. 이 때 발로는 배개를 차 옮겨둔다. 책이나 이불을 옮기는 도중 널려진 옷가지 및 과자봉지를 콘트롤Control 해서 함께 옮겨버린다. 그러니 연습을 해두자. 발 하나로 유연하게 물건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과자봉지는 특별히 발가락 사이에 집어 옮기도록 한다. 괜히 발로 찼다간 과자부스러기 다 떨어져 낭패본다. 마지막으로 창문이 있다면 창문을 꼭 열도록 한다. 먼지가 휘휘 날리는 방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너무 소란스럽지 않게 현관으로 가 문을 열어주고 활짝 웃어라. 가능한 한 매력적으로.
참, 한가지 잊은 게 있다. 아가씨들이라면 잘 모르겠지만(뭐 본 일이 없어서...), 남자들은 보통 집에서 거의 '벗고' 있다. 혼자 있을 땐 100% 그렇다. 옷을 껴입는 시간과 방을 치우는 시간을 합한다면 무척 빠듯할텐데, 그럴 땐 윗도리 입으면서 발로 방바닥 짐더미 모으고, 바지 입는 동안 옷가지랑 이불 안방으로 차내버리고, 나머지만 깔끔히 치우면 되겠다. 혹시 이런 때 말고도 쓰일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남자 분들은 옷 빨리 입는 법도 함께 연마하길 바란다.
근데 왠만하면 좀 치우고 지내자... 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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